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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펜을 들다



순제작비만 3억달러로 알려진 거대한 SF영화 아바타가 크리스마스 특수를 입어 우리나라에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배우들의 몸짓과 감정을 포착한 이모션 캡처 방식을 적용, 판도라 행성 원주민 ‘나비(Na’vi)’를 만들어내고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어우러지는 기이한 생명체들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꿈틀대는 장면을 관객들은 '혁명'이라고 까지 칭송한다
.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타이타닉' 이후 12년 만에 들고 온 영화 '아바타'를 3D로 감상했다. 

영상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굉장했다. 어떤 게 CG고 어떤 게 실사인지 도저히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배우들과 디지털 액터, 100%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배경들이 마구 얽히고 설킨다. 

3D 안경을 끼고 2시간 40분 동안 영화를 감상했지만 전혀 눈이 피로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지나치도록 자연스러워 CG라는 것이 무감각해질 정도였다. 

'아바타'가 던져주는 메시지들은 조금 상투적인 것은 사실이다. 생태주의 예찬, 인간 문명에 대한 혐오 등은 이 영화가 '고전 서부영화'라고 불릴 정도로 '늑대와 함께 춤을'부터 시작된 예전 영화들에서부터 수없이 반복해왔던 코드다. 

하지만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보이게 하는 것도 감독의 능력이리라. 


이 영화에서 내내 강조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교감'이다. 주인공인 제이크 설리는 '타이타닉'의 잭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비 종족 중 높은 신분인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지고 영화 내내 'I see you' 라고 말한다. 원주민과 인간으로 만났지만 그들은 교감하고 소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어떤 만물이든지 적으로 규정해 짓밟아 버리는 파괴 근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가령 산에 먹이가 없어서 가정집이나 농가로 내려온 멧돼지 들과 교감하지 못하고 인간들이 '헌터스'가 돼 버리는 것과 같다. 

제이크 설리가 처음 공룡과 비슷하게 생긴 판도라 행성의 동물들에게 공격 당할 때 제이크를 구해 준 네이티리가 그들을 죽이고 공격한 것을 마음 아파하고 원망했을 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렇게 사나운 놈들과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까. 환경 기자로서 자연을 바라보는 눈이 남달라야 한다고 늘 되새기고 있지만 아직 나에겐 '생태적 감수성'이 많이 부족했고 뭔가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원주민들은 어쨌든 그렇게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말이나 새를 타고 자연을 이용할 때도 특유의 촉수로 그들과 교감을 하며 내가 강제로 그들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받아들여야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연도 어찌보면 우리가 마음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받아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젠가 그들이 더이상 받아주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자연을 더이상 이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판도라'와 같은 행성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뻔한 이야기일 수 있는 이야기들일지라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극장 좌석을 쉽사리 뜨지 못하게 만들었다. 



   
Posted by elleeholic

KBS '미녀들의 수다'에서 키 180cm이하 남성은 'loser'라는 한 여대생의 발언으로 인해 말 그대로 '루저대란'이 일어났다.

인터넷 상에는 그 발언을 한 여대생의 신상명세와 과거 졸업사진부터 성형상담했던 기록까지 공개됐으며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그녀를 향한 돌팔매질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15일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1일 한 남성이 KBS를 상대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며 1000만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조정신청을 낸 데 이어 지난 13일 저녁까지 모두 10건의 추가 손배신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패자도 승자도 없는 이 인터넷 전쟁이 너무 과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일까.  

'Loser'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실패자', '손실자', '분실자'이며 또한 경기에서 진편, 패자를 뜻하고 구어로  전과자로도 쓰인다.

키 작은 남자들이 패배자라는 말 속에는 매력있고 아름다운 여성을 얻기 위한 수컷들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의미일 수 있고 키높이 깔창 속에 숨겨져 있던 남성들의 열등감에 확실히 불을 지핀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것은 기득권과 남성의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과거엔 남성에게 선택권과 주도권이 있었다면 이제 조금씩 여성에게 그것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누가 내게 가슴 C컵 이하는 다 'loser'라고 했다면 나는 성적수치심을 느꼈을지는 몰라도 열등감은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이제 누리꾼들은 재범이 하나만 미국으로 보냈으면 됐지 싶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미수다'의 좀 더 선정적이고 시청자들을 자극하는 제작 방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모든 방송에 대본은 존재한다. 예전에 언론학 수업을 들을 때 심지어 '쿵쿵따'도 대본이 정해져 있었다는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방송에서 한 여대생이 한 발언속에 제작진의 의도가 없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이 학생은 그동안 악플로 입은 정신적 피해와 자신의 신상명세가 공개됨으로 인한 피해, 취업에의 불리함 등을 이유로 제작진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옳다고 본다. 

공영방송인 KBS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에 더욱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또한 이 여대생의 피해는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제작진은 교체 돼 다른 프로그램으로 이동하면 그 뿐이므로 진정 책임을 지고 이 사태를 책임지려면 1차적 책임을 제작진이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사태가 조속히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







Posted by elleeholic

오늘 뉴스를 보다가 참 신선하고 재밌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스머프’ 다시 생각해보니 ‘깊은 뜻’이 보인다

한 세대 전인 1983년 전국의 어린이들을 TV 앞으로 모이게 했던 추억의 만화시리즈 '개구쟁이 스머프'.

버섯 모양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마을에는 다양한 스머프들이 살고 있다. 언제나 잘난 척하는 '똘똘이 스머프' 거울만 보는 '허영이 스머프'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투덜이 스머프' 장난칠 기회만 엿보는 '익살이 스머프'.

그리고 이들의 중심엔 마을의 어른 '파파 스머프'가 있다. 파파 스머프는 지혜의 상징으로 스머프 마을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이를 헤쳐 나갈 길을 알려주고 갈등을 조율한다. 개구쟁이 스머프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노인의 말에 귀 기울이고 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미국 인터넷사이트 '빌리프넷닷컴(Beliefnet.com)'은 부모 입장에서는 만화에 푹 빠져있는 아이들이 마뜩찮을 수 있지만 그 속에는 교훈이 가득하다며 '만화에서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 몇 가지를 소개했다.


70년대 미국에서 제작돼 1994년 국내에서도 방영되며 인기를 얻었던 '핑크 팬더'에서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고루 갖추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핑크 팬더는 이름 그대로 온 몸이 분홍색. 핑크 팬더는 수컷이지만 여성스러운 자신의 분홍색 몸을 단 한번도 부끄러워 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남성성을 의심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당당한 모습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양성의 장점을 고루 갖춘 중성적인 인격체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슈퍼맨'이라도 혼자 힘으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다. 만화시리즈 '슈퍼맨과 그의 영웅친구들(Superman and His Super FRIENDS)'에는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 슈퍼영웅들이 총출동한다. 악당이 나타나면 슈퍼맨은 배트맨에게, 때론 원더우먼에게 혹은 친구들 모두에게 도움을 청해 힘을 합쳐 적을 무찌른다. 이 만화를 보면서 아이들은 팀워크의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70년대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만화시리즈 '폭소 기마특공대(Scooby-Doo and the Gang)'는 낯선 사람을 쉽게 믿지 말라는 교훈을 준다. 캐나다 록키 산맥의 작은 마을에 사는 기마산악경찰 더들리가 악당 스나이들리의 거짓말에 매번 속아 넘어가기 때문. 거짓말에 매번 속아 넘어가는 더들리는 경찰서에서 쫓겨나고 애인까지 잃은 후에야 정신을 바짝 차린다.

워너브라더스가 제작한 '로드 러너'의 주인공 로드 러너는 코요테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전속력으로 도망가고 코요테는 그런 로드 러너를 잡기 위해 온갖 기구를 동원한다.등에 미사일을 묶고 불을 붙여서 따라가고, 가짜 동굴로 로드 러너를 유인해보지만 주인공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친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풍족해도 로드 러너가 상징하는 '행복'을 얻을 수는 없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은 만화다.

이 밖에 최근 영화로도 제작된 '지아이조(G.I.Joe)'는 '전쟁에선 지략이 가장 중요하다', 두 명의 여성 슈퍼영웅이 주인공인 '일렉트라 우먼과 다이나 걸'은 '여자도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준다.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어렸을 적에 참 재밌게 봤던 만화영화들.

어렸을 적엔 아무 생각없이 봤었는데 커서 생각해보니 '아차' 싶은 것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개구쟁이 스머프'가 마르크스 주의(Marxism)에 대한 우화라는 것은 이제 다 알려진 사실.

스머프 마을은 그 자체가 사회주의자들이 꿈꾸는 공동 생활체의 완벽한 전형이다.

국사책에서 공부했던 정약용의 '여전제'처럼 공동 농장에 공동으로 경작하고 모두 똑같이 분배한다는 이상을 제시한 것이다.

완전히 독립적이며 토지는 개인이 아닌 전 공동체의 소유. 스머프들은 각기 다른 직업과 특징을 가지고 있음에도 완벽하게 평등하다.

만화영화 '개구쟁이 스머프' 속에서 모든 소유물은 공공의 소유이며 집단은 개인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이 된다.

집단 내의 완벽한 평등이라는 것은 스머프들이 모두 똑같은 종류와 색깔의 옷을 입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여기에 사악한 마법사 '가가멜'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는 탐욕스럽고 무자비하며 유일한 관심사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총족인 자본주의의 '이기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밖에도 스머프가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하고 있다는 증거는 얼마든지 많다.

모든 직업이 평등하고 각자의 맡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스머프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누구는 죽도록 일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고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우선으로 여기며 직업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핑크팬더'가 여성성과 남성성을 고루 갖춘 캐릭터라는 것도 정말 신기하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아이는 '마징가 제트', 여자아이는 '캔디'를 보면서 자라야 하는 것처럼 생각해왔다.

갑자기 '아기공룡 둘리'는 왜 초록색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공룡이 초록색은 아닌데 말이다.

또 한 때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인 '곰돌이 푸'에 대해서도 성별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전세계 적으로 남자 성우가 많지만 여자 성우인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런 논란 자체가 처음 캐릭터를 만들때부터 중성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린 곰돌이 캐릭터에 남성성과 여성성, 이분법인 잣대를 들이대는 우리의 시선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하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모든 만화영화의 캐릭터가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라이온킹'은 미국의 패권주의,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악당들로 나오는 늑대들은 다 유색에다 히스패닉계 말투를 사용하고 있어 인종차별의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이 밖에도 알라딘과 뮬란 등 디즈니 만화영화의 인종차별적인 요소는 곳곳에 스며있다.

만화영화가 그리고 있는 환상적인 판타지 뒤에 감쳐진 메시지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다 차치하고라도 난 아직 만화가 재밌다^^








Posted by elleeholic
Canon | Canon EOS 50D | Manual | Pattern | 1/40sec | F/5.0 | 0.00 EV | 19.0mm | ISO-1600 | Flash fired, compulsory flash mode. | 2009:08:07 13:45:56


막판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했던 길고 긴 협상 직후 한상균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은 사측과 마주 서 있었다.

제대로 해결 하지 못한 많은 문제들을 뒤로 하고 그렇게 끝이 났다.

이제 다시 시작인가보다.

그날 8월6일 밤 나에게 세 통의 문자가 왔다.

내부상황을 기자들에게 메시지로 전달하던 이창근 기획부장의 메시지.


"이 시간부터 저의 인터뷰는 종료합니다. 그동안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정리해고 투쟁 승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정부의 살인 폭압정권의 실상을 살떨리게 경험합니다.

오랜시간 뵙지 못하지만 그동안 감사했어요."

아...왜이리 가슴이 먹먹해져 오는 것일까....아....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떠나간 내 사람은 어디에
내가 떠나 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Posted by elleeholic


'미디어법' 통과, 언론인 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양론이 맞서 있다. 미디어법 규제 완화가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될 것이냐,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진행 중이다.

근데 왜 12월 하순에 직권 상정을 해서 방망이를 치려고 했을까? 무엇때문에 서두르는 걸까? 이런 의문들을 많이 제기한다.

MBC, KBS의 민영화 문제와 무관하게라도 이 미디어법 개정이 이뤄지면 우리 방송시장은 구조조정의 태풍에 휘말리게 된다.

이 문제는 방송 종사자의 문제지, 우리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인식론적인 것인데 우리는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다. 요즘 인터넷까지 있기 때문에 신문, 방송, 책 이런 전통적인 매체 뿐 아니라 접속해서 클릭하면 수많은 정보가 날마다 쏟아진다.

그 정보가 참인지 거짓인지, 이 정보의 가치가 높은지 낮은지를 알기가 어렵다.

너무나 많은 정보를 만나기 때문에 정보의 진위여부, 가치의 정도를 일일이 테스트하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냐면 웬만한 것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다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직접 관여된 것에 대해서만 그 정보의 진위여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일상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어떤 정보가 주어지느냐에 따라서 내가 직접 관련되지 않은 대부분의 문제에 대해 누군가가 주는 정보에 따라가게 돼 있다.

결국은 세상에 대한 세계에 대한, 삶에 대한, 공동체에 대한, 이웃나라에 대한 또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모든 문제들이 주로 누가 미디어를 장악하고 어떤 정보를 주느냐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정보를 가공해서 제공해주는 사람(언론인, 미디어 관리자)이 나쁜 목적을 가지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나쁜 목적이 없는 경우에도 자기 목적에 종속시켜서 정보를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거기에 유리하게 일부러 정보를 가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가 취사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

만약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않고 거의 모든 미디어와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의 내용이 특정한 경향성을 가진 누군가가 거의 모든 미디어를 장악하고 자기의 목적에 맞게 데이터를 가공해서 제공한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도 못느끼는 사이에 빅브라더에게 끌려다니게 되는 것이다.

의식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미디어의 문제라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효과라는 것을 넘어서서 방송신문 겸영규제, 대자본의 종합채널 진입규제 등을 풀었을 때 우리 국민에게도 경제적 이익이 있을까.

있다고 해도 다른 측면으로 영향이 없을지 생각해 볼 시점이다.

현재 우리는 읽는 70~80%의 정보량이 동일한 시각, 동일한 이해관계, 동일한 세계관, 동일한 작업방식을 가진 사람에게 장악돼 있다.

그런 상황에 살고 있지만 중독되진 않는데 그 이유는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가 있기 때문이다.

시장점유율이 50%인 신문과 10%인 신문을 포탈에서 같이 비교할 수 있다.

인터넷이란 뉴미디어를 통해 신문이라는 전통적 매체의 편향성을 각 개인이 극복할 수 있다.

만약 이 모든 것들이 한 사람에 의해 장악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중동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상당히 논란이 있는 방식으로 정보를 가공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신문만 가진 것이 아니고 방송까지 가지고 있다면 예를 들어 MBC는 조선일보 방송이 되고, KBS는 중앙일보 방송이 된다면 방송과 신문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 서로 다른 시각 서로 다른 정보가공방식은 없어지는 것이다.

경영규제를 푼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실제 미디어를 누가 지배하는가. 신문사나 방송사의 오너나 경영진이 지배하고 있긴 하지만 광고주 또한 지배하고 있다.

최근에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는 대기업의 광고가 거의 없다. 이 두신문이 정부를 엄청나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광고주인데 정부나 대통령을 세게 비판하는 신문에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신문 광고를 안 준다는 의혹이 있다.

이 광고주는 대기업이다. 만약 광고를 통해서 신문과 방송을 반쯤 지배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아예 방송과 신문을 소유하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종국적으로 포털까지 지배하는 것이다. 포탈에 다른 컨텐츠를 제공해주는 마이너리티 그룹이 종속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향성, 하나의 세계관 심지어는 왜곡과 과장과 조작과 누락을 서슴지 않는 집단에게 완벽하게 미디어가 장악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미디어를 지배하는 자가 의식을 지배하고 국민의 의식을 통제하면 권력을 쥐는 것이다.

그런 위험성이 존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경제적 효과가 크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미디어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이다.

-유시민 강의 내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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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신문과 마찬가지로 여론형성에 참여하는 언론매체로서 그 기능이 같지만 아직까지 그 기술적, 경제적 한계가 있어서 소수의 기업이 매체를 독점하고 정보의 유통을 제어하는 정보유통 통로의 유한성이 완전히 극복됐다고 말할 수 없다.

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송매체는 음성과 영상을 통해 동시에 직접적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강한 호소력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 대중조작이 가능하며 방송매체에 대한 사회적 의존성이 증가해 방송이 사회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추세이므로 이러한 방송매체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방송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한 규율의 필요성은 신문 등 인쇄매체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언론이 제시하는 '프레임'에 관해서 그것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쓰는 기사의 헤드라인이 무서워지는 날이 오면 어쩌나.

난 경제학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미디어법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것이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서 심히 우려되며 이것은 언론인 만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신문과 방송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프레임 속에 갇혀살게 될 우리 모두를 위해서라도 언론의 공공성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elleeholic

지난 2일 서울과 일부 충청도, 강원도 지역에 국지성호우가 쏟아졌다.

기상청 예보는 분명히 밤 늦게 비가온다고 했지만 오후 3시부터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렸다.

그날 기상청 '오보'와 관련된 기사가 나간 후 기상청에서 핸드폰을 전화가 걸려왔다.

"무릎팍도사보다 못 맞힌 기상청, 대체 왜?"란 기사 제목 때문이었다.


기상청 : 기상청이 무릎팍도사보다 구체적으로 뭘 못 맞혔는지 증거를 대지 않으면 언론중재로 갈 수 밖에 없어요.

아니 무릎팍도사가 예보하는 사람도 아니고 과학적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우리랑 비교하는게 말이나 됩니까?

박 기자를 비꼬면 기분 좋아요? 입장 바꿔놓고...


(기사 내용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무릎팍도사' 그 말만 빼달라는 거였다)

: 왜 저랑 비교를 하십니까. 기상청은 공공기관이고 저는 개인인데...


전화의 내용은 기상청을 이런 식으로 희화화 시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제목을 좀 고쳐달라는 것.

기관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 청구 가능하다며 법을 운운해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는 기상청의 모습이 한편으론 측은해 보였다.

기상청이 신이 아니고서야 100% 예보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갑작스러운 비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기에 단 1%라도 예측률을 올릴 수만 있다면 나는 계속 '오보' 기사를 쓸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로 나는 대학교 때 들었던 언론법제 과목 교재를 찾아봤다. 그리고 그 때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께 전화해서 물어보기 까지 했다.

만약 내가  장관이 성희롱을 했다고 기사를 썼다 치자. 상대방이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할 때  

이것에 대해 명예훼손 죄에서 위법성이 조각되려면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었고 그럴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면할 수 있다.

상대방이 공인일 때에 한해서 이며 일반 개인 사이에서는 얘기가 다를 것이다.

결론은 4일이 지나서 제목을 고쳤다. 논쟁에 힘을 쏟을 만큼 내가 한가하지도 않거니와 자존심 세우고 싶지도 않았다.

기자가 취재원에게서 들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기사화시킨다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기관의 명예까지 생각하며 기사를 써야 한다니 씁쓸하기만 하다.








Posted by elleeholic


중견제약회사 영업사원 이 모씨. 이 씨의 주요 업무는 의사에게 약의 효능을 설명하고 약을 써달라고 요청하는 것. 어떤 약을 처방할지 결정하는 것은 순전히 의사의 몫이다.

몇 몇 의사들은 대놓고 "너희는 몇% 줄 수 있냐"고 묻는다.

KBS '시사기획 쌈'은 26일 오후10시 방송에서 제약업계와 의사들 사이의 오래된 유착관계를 다룬 '접대 그 은밀한 거래'를 방송했다.

방송에 따르면 한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인터뷰를 통해 골프접대는 물론이고 안마라든지 의사들이 해달란 대로 다 해줘야 한다며 대놓고 ‘너희는 몇 %를 줄 수 있는지’ 수치를 요구하는 의사도 있어 수치로 견적서를 써 준다.

이 사원은 양심이 어느 정도 있어서 약이 좋을 것 같아 쓰는 의사는 5%미만이라고 밝혔다.

취재진이 입수한 중견제약회사의 한 내부문건에는 12개월 약을 쓰는 조건으로 약 값의 30%인 1080만원을 현금으로 선지급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또 다른 문건에는 엑셀로 작성돼 A4 용지로 수백 장에 달했는데 적게는 약 값의 20%에서 많게는 50%까지 전국 병의원 1700곳에 ‘리베이트’ 명목으로 한 달에 3억 정도씩 따로 책정됐고 한 달에 2000만원씩 받아가는 일반병원이나 심지어 보건소까지도 포함돼 있었다.

특히 그동안 일반병원의 ‘리베이트’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보건소에 일하는 공무원 신분인 ‘공중보건의’가 포함된 문건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9월 600여 만원의 리베이트를 받아 적발된 한 충청도의 보건소를 찾아갔을 때 보건소장은 약을 선택하고 처방하는 것은 공중보건의의 권한이라 아는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곳의 공중보건의들도 제약회사 영업사원을 만난 적은 있지만 접대나 돈을 받은 적은 없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제약회사 직원의 이야기는 달랐다.

제약회사 관계자는 “공무원 신분이라고 해도 돈을 주는데 싫다고 할 사람은 없고 공중보건의들은 월급이 적어서 오히려 현금을 더 좋아한다”고 말해 충격을 던져 주었다.

한 공중보건의는 “약 값의 20% 전후로 받는다고 알고 있으며 받는 사람들은 어차피 안 받으면 영업사원들 주머니로 들어가니 양심의 가책을 못 느낀다”고 답했다.

연간 1조원이 넘는 돈이 접대와 리베이트에 사용되는 것은 결국 약 값에 포함돼 소비자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어 문제로 지적됐다.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고병희 제조업경쟁과장은 “이런 관행들이 약가에 반영되고 소비자에게 전가돼 높은 가격에 약을 구매할 수밖에 없으며 소비자 피해로 직결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이 방송을 시청하면서 아주 오래된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의사와 제약회사 간의 리베이트에 대해 왜 이런 고질적인 관행이 성립하게 됐는지, 좀 더 구조적인 차원에서 문제는 없는지, 단순히 돈을 받은 몇몇 공보의들을 색출하는 것 외에 정부대책은 없는지 수박 겉핥기 식으로 다룬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건축업과 연예계 등 우리 사회에 전반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접대 문화를 한꺼번에 다루려고 했던 제작진의 과욕이었으리라.

하지만 룸싸롱에서의 접대 문화와 이 리베이트는 좀 더 다른 정책적 시각에서 접근해야만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돈을 받은 의사는 분명 지탄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공정위에서 몇 몇을 잡아낸다고 끝날 수 있는 문제였으면 예전에 없어지지 않았을까.

어떤 구조적인 모순이나 법의 공백은 없는지 깊이 고민해 볼 문제이며 칼을 뽑아들고 흠집만 실컷 내고 칼집에 넣지 않을지 걱정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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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반 홍보 일을 했던 여성이 팬을 대로 억대의 돈을 뜯어내 쇠고랑을 찼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16일 가수 서태지씨의 팬인 김모씨(42)에게서 1억1500만원을 가로챈 채모씨(39·여)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채씨는 2005년 10월 김씨에게 “서태지씨의 아버지가 무리하게 사업확장을 하다 문제가 생겨 어려운 처지가 됐다”고 속인 뒤 자신이 일하는 보험회사의 보험에 가입시켜 대출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채씨는 또 김씨로부터 빚 독촉에 시달리자 서태지씨 아버지에게 1억5700만원을 빌려줬다는 내용의 차용증을 위조한 혐의도 받고 있다.

<강병한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2009-04-16 18:02:23

얼마전 이런 뉴스가 있었다. 서태지 매니아 라면 누구나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을 것

이다.


처음에는 그냥 돈을 빌리고 못 갚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서태지 팬이었던 나도 저

사람에 대한 호감이 남아있었나보다)


경제범을 폭행치사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때리는 대한민국에서 돈 못 갚은 사람의 죄목

은 '사기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읽어보니 차용증을 위조한 혐의도 받고 있었다. 정말 어려웠나보다.

중학교 시절. 그때는 사서함이란 게 유행했었다. 핸드폰이 지금처럼 보편화 돼 있지 않

았던 시절.


친구들이 내 사서함에 어떤 메시지를 남겼을까 늘 궁금해 확인해보기도 하고 메시지가

화근이 돼 싸우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서태지의 사서함 지기가 바로 저 채씨였다. 낭랑한 목소리로 서태지의 최근 근황

을 전해줬었다.
이어서 서태지의 목소리가 나온 적도 있었다.

그 당시 누구라도 서태지와 채씨는 친분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

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불법적인 방법으로 저 사람은 서태지의 이름을 팔았다.

보험회사에 다닌다고 언젠가 어떤 잡지와 인터뷰 한 적도 있었던 그녀.

서태지 매니아들에게 알려진 몇 안되는 이름 중에 하나였던 그녀가 저지른 이번 일은

연예인 후광효과가 얼
마나 무서운 것인지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후광효과'라는 것이 있다. 유명연예인과 친분이 있다고 하면 그 본인까지도 대단해 보

이는 것.


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그 효과는 어느정도
필요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남에게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할 텐데.

이번 일로 나의 어린시절 중 한 켠을 차지했던 목소리의 추억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Posted by ellee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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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故 최진실 씨가 자살했을 때도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TV나 신문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름이 바로 '장.자.연.'이다.

언제부터 기자들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이렇게 까지 열심이였던가.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이미 까발려질대로 까발려진 '장자연 리스트'일지도 의문이 든다.

난 그 '성상납'이라는 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상납'이란 이미 그 대상이 임금이나 윗사람을 뜻하는 말로서 남성적 지배이데올로기가 반영된 말이다.

한 여성 연예인이 성을 착취 당했고 가해자들은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장자연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썩을 대로 썩은 이 사회가 죽인 것이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야 하는 일이나 그 보도에 있어서 선정성이 도가 지나쳐 가고 있다. 국민들이 궁금한 것이 '소속사 사무실에 침대와 샤워기가 몇 개 있는지, 몇 명의 DNA가 나왔는지' 인지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언론이 장자연 리스트를 대서특필하는 동안 예멘에서의 한국인들의 억울한 죽음은 그냥 묻혀버렸다. 물론 장자연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열을 올리고 있는 수많은 연예부 기자들은 그 동안 연예계의 고질적인 관행을 모르고 있었을까.

나도 언론인으로서 가끔 내가 약자의 편에 서 있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기자는 어딜 가도 갑이다. 하지만 처음 기자를 하기로 마음 먹으면서 약자에겐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기자가 되겠다고 되뇌였었다.

언론의 기능 중에 '의제설정' 기능은 가장 중요하고 또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글과 말이 사회의 'agenda'가 된다면 기자에게 있어서 그것만큼 자부심있는 일이 또 있을까.

지금의 장자연 보도는 언론이 해야할 진정한 본분을 상실한 채 표류하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성과 노동을 착취당한 채 호소할 곳이 없어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루 빨리 본질을 찾아야 한다.

여성은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안타까운 죽음이 한낱 눈요깃거리에 지나지 않게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Posted by elleeholic